아래 글은 영화 마테호른에 대해 상당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에 대해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이 글을 보지 않기를 권합니다.
영화 "마테호른"을 보았습니다.
주인공 프레드는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아들과도 불화하여 아주 고독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중년 남성입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주일에 늘 예배에 참석하며, 설교도 듣고 찬송도 부르건만 교회도 믿음도 그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좋은 옷을 입고 모두들 아무 문제 없는 듯 나와서 고상하게 예배를 드리고는, 그 어떤 사귐과 나눔이 없이 다시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프레드가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게 해주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물은 의외로 모자란 듯한 중년남성 테오입니다.
어느 날, 프레드는 테오에게 돈 얼마를 도와주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차에 기름이 다 떨어졌다고 도움을 요청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 편 이웃집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돈을 구걸하고 있는 테오를 보고는 프레드는 달려나갑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알고 보니 테오는 누군가를 제대로 속일 줄도 모르는 정신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었던 프레드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들여서 그에게 식사과 숙소를 제공합니다. 기본적인 생활도 가르치지요. 그런데 그 테오를 보살피면서 그는 덮고 있었던 그의 삶의 문제를 직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테오와 함께 자신의 삶을 문제를 결국 극복해 냅니다.
죽은 아내와의 관계도, 자신이 직접 쫓아내었던 아들과의 관계도 그는 용기 있게 풀어냅니다. 마테호른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프로포즈한 곳이기도 하며, 또한 그의 인생의 가장 커다란 문제가 풀리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은 혹시 프레드의 그것과 닮지는 않았는가 하구요.
주일마다 말끔히 차려입고 교회를 가서 예배도 드리지만, 거기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 가지.
진정한 만남이 어떻게 우리에게 치유를 가져다 주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누군가를 도와야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주로 일방적으로 베푸는 자선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세의 문제점은 나는 너보다 더 낫다는 일종의 우월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9장 1~3절에서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장애인들도 다 하나님의 목적으로 위하여 태어난, 소중한 존재임을 제자들에게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말씀을 보면,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자들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도,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만난다면 우리는 서로를 돕는 사람이 됩니다.
영화 마테호른에서도 그같은 진실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프레드가 테오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테오가 프레드를 돕습니다. 오히려 테오가 프레드에게 훨씬 더 큰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기만 한다면, 우리는 늘 서로를 돕는 사람이 됩니다.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 정반대로 사는 세상, 나와 다르다고, 나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며 사는 세상이야말로 지옥입니다. 왕따를 양산해내면서 나는 왕따가 아니라고 말하는 우리네 아이들의 학교는 그런 의미에서 지옥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학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그대로 비춰내는 거울입니다.
부끄럽지만, 교회도 아직 장애인이나 새터민이나 이주노동자 혹은 결혼이주여성들이나 독거노인이나 성소수자를 만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희망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에 있습니다.
프레드와 테오가 함께 처음 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이 예배당에서 선포하고 있던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였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말입니다.
프레드는 얼떨결에 그 말씀을 실천한 것이었고, 하나님은 그 신비로운 섭리로 테오를 통해 용서하지 못했고 용서받지 못하며 살고 있던 불쌍한 인생, 프레드를 고쳐주신 것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