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6일 월요일

설교(들음)의 한계

이제는 까마득히 옛날이 되어버린 저의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수업시간 때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때는 다 알 것 같던 것이 막상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면 까마득히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 때가 있었습니다. 들어서 이해했다고 해서 완전한 앎에 이르렀다고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그토록 복습을 강조했던 것이겠지요. 

                                                                         <출처: 구글>

같은 현상이 설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들어도 그 때뿐인 것은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천은 복습과 같습니다. 실천이 있을 때 그 말씀은 온전히 내 속에 새겨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휘발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여기에 설교의 한계가 있습니다. 설교가 아무리 은혜로워도, 실천 없이 은혜받았다는 감정의 고양만으로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직접 실천으로 복습해야 합니다. 
신앙을 교리나 신학 같은 이론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신앙은 오히려 우리가 익혀야 하는 영적 걸음마와 같습니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 힘을 주리라'는 결론의 설교를 백 편을 들었다고 해도 , 당장 집에 돌아가 홀로 일어서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그의 신앙은 오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로 내 두 다리로 일어서는 느낌과 기쁨을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일어설 때엔 넘어짐이 있겠지만 그 넘어짐을 통해 잡아주심도 경험할 것입니다. 잡아주심을 경험해야 설교를 통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선순환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소그룹모임은 실천공동체여야 합니다.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다시 짚고, 실천할 때 예상되는 상황의 어려움이나 적용의 애매함이 있을 때 묻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면서 적절한 조언이나 인사이트, 격려 등을 얻을 수 있고, 그 실천으로 인해 다시금 더 깊은 말씀의 묵상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구글>

마지막으로 실천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설교의 메시지가 아무리 도전이 되어도 "지금 당장" 그런 삶을 살아낼 수는 없습니다. 옛말에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 하였고, 또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큰 목표를 세우면 좌절만 경험할 뿐입니다. 지금의 영적 근력으로도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잡으십시오. 

설교를 들음에 만족하지 말고, 믿음의 차원을 삶으로까지 확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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